전체 글121 일본 영화 중력 피에로 리뷰 (사적 제재, 유전 결정론, 가족 연대) 2009년 개봉한 일본 영화 〈중력 피에로〉는 강간 피해 생존자의 아이라는 출생 비밀을 품은 형제가 생부를 직접 단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소설로 먼저 접했을 때, 저는 이 작품이 건드리는 질문들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읽는 내내 느꼈습니다. 핏줄보다 강한 것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정말로 그게 가능한 건지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중력 피에로, 피보다 진한 것이 있다는 이 작품의 주장, 어디까지 설득력이 있나〈중력 피에로〉의 서사적 핵심은 유전적 결정론(genetic determinism)과 환경적 양육론의 충돌입니다. 유전적 결정론이란 한 사람의 성격·능력·행동이 DNA에 의해 이미 결정된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영화 속 형 이즈미는 유전학을 전공하면서 끊임없이 하루의 출생 배.. 2026. 8. 12. 일본 영화 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 리뷰 (첫사랑, 학원로맨스, 윤리논란)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예쁜 얼굴이나 보다 끝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순정만화 원작 학원물이라고 하면 뻔한 전개에 비주얼만 화려한 공허한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17살 교복 시절의 어떤 감정이 되살아나는 묘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2017년작 〈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는 단순한 힐링 로맨스인 동시에, 생각보다 여러 층위에서 따져봐야 할 작품입니다.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 입학식 하품에서 시작된 첫사랑의 맥락저도 처음엔 히비키라는 캐릭터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내성적인 여고생이라는 설정이, 자칫하면 그저 수동적인 주인공으로 흘러.. 2026. 8. 12. 일본 영화 모테키 리뷰 (찌질한 청춘, 남성 판타지, 연애 타이밍) 31년 동안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자에게 갑자기 미녀들이 몰려든다. 영화 〈모테키〉가 던지는 전제는 이 황당한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피식 웃었습니다. 너무 뻔한 남성향 판타지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그냥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유키오의 방황은 제가 이십 대 초반에 겪었던 서툰 시간과 기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모테키, 찌질한 청춘의 초상, 그리고 저도 거기 있었습니다영화의 주인공 후지모토 유키오는 서른한 살, 모태솔로에 SNS 중독자입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엉망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어 안달이 난 인물이죠. 온라인 뉴스 사이트 '나탈리'에 입사하면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동료들의 시선은 차갑고 첫.. 2026. 8. 11. 일본 영화 리버스 에지 리뷰 (세기말 청춘, 결핍, 파국) 학창 시절 내내 겉으로는 멀쩡한 척 살아갔는데, 실제 속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주변이 왁자지껄 떠들어도 저 혼자만 무채색 공간에 남겨진 것 같은 그 기분, 혹시 비슷하게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리버스 에지(River's Edge, 2018)는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리버스 에지, 더러운 강변이 배경인 이유 — 세기말 일본의 결핍 서사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리버스 에지는 오카자키 교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오카자키 교코의 원작은 1990년대 일본 만화계에서 세기말적 허무주의(nihilism)를 가장 날카롭게 담아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여기서 허무주의란 삶과 세계에서 아무런 의미나 가치도 발견하지 못하는 사상적 상태를 뜻하며, 이 영화에서는 청소년들의 무감각한 태도와 자기.. 2026. 8. 11. 일본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리뷰 (에테르, 학교폭력, 도피주의)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히 '아름다운 일본 청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뷔시 풍의 피아노 선율과 햇살 가득한 초록빛 들판이 화면을 채우는 동안, 그 뒤에 숨겨진 것들을 온전히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Chou, 2001)〉은 이와이 슌지 감독이 포착한 가장 잔인한 사춘기의 풍경입니다. 아름다움과 폭력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불편하게 남아있습니다.릴리 슈슈의 모든 것, 어두운 방 안의 소년, 현실을 견디는 방법중학생 유이치의 하루는 겉으로 보면 평범합니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하지만 그 내면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현실을 버티.. 2026. 8. 10. 일본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 리뷰 (유랑, 홀로서기, 성장) 타인의 눈길이 피부에 박히듯 느껴졌던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학창 시절, 작은 오해 하나가 불씨가 되어 주변 전체가 수군거림으로 가득 찬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는 바로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백만엔걸 스즈코, 전과라는 주홍글씨, 스즈코는 왜 떠났을까스물한 살의 스즈코는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직에 실패한 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평범한 청춘입니다. 친구 리코와 함께 월세를 줄이려 동거를 시작하지만, 리코의 남자친구 타케시가 얹혀살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타케시가 스즈코가 데려온 고양이를 임의로 버리자 격분한 스즈코는 그의 짐을 창밖으로 던져버립니다. 결과는 폭력 및 재물손.. 2026. 8. 10. 이전 1 2 3 4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