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망가진다는 말, 믿으시나요? 저는 한때 그 말을 위로처럼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인간실격〉을 보고 나서야, 그게 위로가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며 스러져 가는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아름답고도 불편한 기록입니다.
인간실격, 가
면과 소외, 요조가 선택한 '익살'이라는 생존법
당신은 혹시 정말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 보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집단 안에서 겉돌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주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영화 속 요조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오바 요조는 유복한 의원 집안의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돈과 명예를 좇는지, 왜 그것이 행복이라 불리는지 공감할 수가 없었죠. 그가 택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는 '익살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방어기제란 내면의 불안이나 갈등을 직접 마주하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택하는 심리적 회피 전략을 의미합니다. 요조에게 광대 역할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며 소름이 돋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같은 반 소년 다케이치가 단 한 번의 눈빛으로 요조의 연기를 꿰뚫어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요조가 느낀 공포는 단순히 비밀이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온 '가면'이라는 세계 전체가 무너질 것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도쿄에서 요조는 호리키라는 인물을 통해 술, 담배,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독서회를 접하게 됩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고 계급 철폐를 주장하는 사상 체계로, 당시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일종의 저항 문화로 소비되었습니다. 요조가 그 비합법적 모임에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는 설정은 단순한 일탈이 아닙니다. 세상의 패배자들 속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 것이죠. 솔직히 이 부분에서 저는 요조를 비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완벽한 사람들의 무리보다 조금 엉성하고 망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 적이 있었으니까요.
요조의 소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아 분열(ego fragmentation) 개념이 도움이 됩니다. 자아 분열이란 자신의 진짜 모습과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요조를 둘러싼 인물들의 특징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케이치: 요조의 가면을 꿰뚫어본 유일한 인물. 훗날 예언처럼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호리키: 겉으로는 동료지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도회적 이기주의자.
츠네코: 요조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 결국 동반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구도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요조 주변의 사람들이 정말 나쁜 것일까요, 아니면 요조 자신이 끝까지 관계를 직면하기를 거부한 것일까요?
신뢰와 자학, 낭만주의가 감춘 이기주의의 민낯
〈인간실격〉을 보고 나서 며칠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처음엔 요조가 가여웠다가, 어느 순간 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진짜로 건드리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조는 구멍가게 처녀 요시코와 결혼하며 처음으로 평범한 삶을 꿈꿉니다. 요시코의 절대적 신뢰가 요조를 변화시킬 것 같았죠. 그러나 요시코가 낯선 남자에게 유린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요조는 이 사건 앞에서 전형적인 수동적 자아(passive ego)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수동적 자아란 외부 자극이나 사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감정적 충격을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만 흡수하며 무너져가는 심리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조는 요시코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대신, "신뢰는 죄인가요"라고 자문하며 스스로의 고통 속으로 침잠해 버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낭만이 아닙니다. 고통을 철학으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볼 여력을 잃습니다. 요조가 결국 모르핀 중독(narcotic addiction)으로 치달은 것도, 삶의 고통을 외부의 무언가로 무마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모르핀 중독이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에 신체적·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상태로, 금단 시 극심한 신체 증상을 유발합니다. 결코 낭만적인 방황이 아닙니다.
이 작품이 갖는 문학적 가치는 분명합니다.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역대 판매량 2위를 기록했을 만큼, 〈인간실격〉은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곳을 가감 없이 비춥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 중의원 아버지 아래 자라며 느낀 계급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요조라는 인물에 투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품이 종종 오독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조의 자학과 파멸을 '더러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순수한 영혼의 비극'으로만 읽는 시선은, 사실 요조 자신이 스스로에게 씌운 서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기 파괴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서사가 현실에서도 자기혐오와 회피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가 비판적으로 보는 지점은 세 가지입니다.
책임 회피: 요조는 모든 비극을 세상 탓, 인간 탓으로 돌리지만 정작 자신이 관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끝까지 직면하지 않습니다.
여성 소비: 츠네코, 시즈코, 요시코, 약방 부인, 식모 테츠까지, 요조 주변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그를 구원하거나 부양하는 존재로만 기능합니다. 요조가 여성을 "피곤하고 난해한 존재"라 폄하면서도 위기마다 여성의 품을 찾는 모순은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자학의 정당화: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최소한의 의지마저 포기한 채 약물에 몸을 던지는 것은 순수한 영혼의 비극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파탄으로 끌어들이는 이기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저를 오래 붙잡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의 마담이 다자이에게 전한 말,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우리가 알던 요조는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라는 그 한 마디. 요조를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이 내린 평가가 '인간 실격'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던지는 진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완전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자격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자신의 더러움을 인지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인간다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조처럼 그 부끄러움을 낭만으로 감추는 대신, 직면하고 한 발이라도 내딛는 것. 그것이 이 쓴맛 나는 작품이 우리에게 남기는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로 먼저 접하시길 권합니다. 속도를 늦추고 읽을수록 요조의 목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