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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본 영화 사랑이 없는 연인들 리뷰 (결핍, 방어기제, 히키코모리)

by 무비체커 2026. 8. 14.

시청률 4%대에 머물렀지만,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드라마였습니다. 2024년 1월 방영된 일본 드라마 〈사랑이 없는 연인들〉 이야기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를 기대하고 켰다가, 생각보다 훨씬 씁쓸하고 묵직한 이야기에 멈칫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연인들, 15년 만의 약속이 꺼낸 것, 각자의 연애 결핍

드라마는 학창 시절 단 한 번 나눴던 약속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유마의 제안으로 세 친구는 15년 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런데 약속 당일 실제로 나타난 사람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 마사카즈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 디테일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15년이 지나도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이 정작 가장 무책임해 보이는 인물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모인 세 남자는 저마다 전형적이면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연애를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마사카즈는 매칭앱을 통해 여자를 만나되 딱 세 번 이상은 만나지 않는 규칙을 고수합니다. 유마는 상대에게 자기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내 질리게 만들고, 타몬은 서른이 되도록 연애 자체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입니다.

여기서 잠깐,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에리카의 오빠는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 상태로 묘사됩니다. 히키코모리란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회적 은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일본 내각부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히키코모리 인구는 약 14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드라마가 이 설정을 굳이 에리카의 가족 안에 배치한 것은, 연애의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니라 가족과 환경이라는 구조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미팅은 엉망으로 꼬입니다. 타몬의 회사 동료 토미타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았지만, 막상 당일에 마사카즈는 방송국 PD에게 "작가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악담을 듣고 미팅을 무단으로 째버립니다. 타몬과 토미타도 야근으로 불참하면서 결국 유마와 남미 단 두 사람만 미팅 장소에 남겨집니다. 일반적으로 미팅이라는 설정은 드라마 안에서 낭만적 설레임의 장치로 쓰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각자의 결핍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민낯의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의 문제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사카즈: 매칭앱을 통한 반복적 단기 만남, 타인과의 감정적 연결 회피
  • 유마: 일방적 소통 방식으로 인한 관계 단절 패턴
  • 타몬: 감정적 친밀감(emotional intimacy)에 대한 과도한 방어로 연애 경험 전무
  • 에리카: 가족 돌봄 부담과 외부 신뢰 결여로 인한 관계 형성 어려움
  • 남미: 사회적 기대(결혼 압박)와 자기 존중감 사이의 충돌

    위로의 각본, 키스, 그리고 오해가 만들어낸 소통의 벽

드라마의 핵심 감정선은 마사카즈와 에리카의 관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마사카즈가 건넨 각본을 쌀쌀한 날씨에도 끝까지 읽어내린 에리카는 "대사 하나하나가 저에게 하는 위로 같았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 순간 마사카즈는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키스를 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드라마가 그리는 소통 오류(communication breakdown)의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소통 오류란 송신자의 의도와 수신자의 해석 사이에 간극이 생겨 관계가 왜곡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마사카즈의 입장에서 그 키스는 "당신의 진심이 내 글에 닿았다는 감동"이었지만, 에리카의 입장에서는 "매칭앱 남자를 조심하라"는 토미타의 경고와 겹쳐지며 "몸만 노린 행동"으로 읽혔습니다.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의미로 수신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 것 같은 순간, 상처받을까 봐 먼저 물러서거나 선을 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고 싶으면서도 오해받을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섰던 기억이 이 장면에서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제 경험상 그런 식으로 그어두었던 선은 관계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드라마가 지적하는 또 다른 현상은 애착 회피(attachment avoidance)입니다. 애착 회피란 친밀한 관계에서 감정적 노출이 두려워 상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거나 관계를 스스로 끊어내는 심리 패턴을 말합니다. 마사카즈의 "세 번 만나면 연락을 끊는" 규칙, 타몬의 수면 관리 앱을 추천하는 AI 같은 냉정함, 에리카가 매칭앱을 즉시 탈퇴해버린 행동 모두 이 패턴의 변형입니다. 연애 심리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애착 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관계 초기에 상대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매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상당히 피상적인 진단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연애를 회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사랑이 싫은 게 아니라 상처받는 것이 두렵고,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사카즈가 각본을 완성하지 못하고 멈춘 것도, 에리카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를 다시 달려가게 만든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변화도 조용하지만 의미 있었습니다. 유마가 남미의 직장까지 찾아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알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 타몬이 토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AI 같은 태도를 사과한 순간,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잘 보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연인들〉은 설레는 러브라인을 기대하고 보면 분명히 답답한 드라마입니다. 전개가 느리고, 인물들이 번번이 소통을 틀어막습니다. 그러나 "왜 나는 사랑이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이라도 던져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의 어느 인물 한 명쯤은 자신과 겹쳐 보일 것입니다. 저는 마사카즈가 15년 전 혼자 약속 장소에 나갔다는 마지막 반전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상처받을 용기는 어쩌면 그렇게 사소한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참고: https://youtu.be/OaSY_qHcB7c?si=CmKj07EOYvVHVF-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