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7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 리뷰 (동거 갈등, 세대 차이, 가족 관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으셨나요? 저는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의 굽어진 등을 바라보면서, 그 착각이 얼마나 게으른 믿음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타나다 유키 감독의 2016년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는 바로 그 게으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아버지와 이토씨, 동거 갈등 — 가장 가까운 사람이 왜 가장 불편한가서른네 살 아야와 그보다 스무 살 많은 동거남 이토 씨의 공간에 일흔네 살의 아버지가 짐을 싸 들고 무작정 들이닥칩니다. 영화는 이 순간부터 세 사람의 동거 갈등을 꾸밈없이 펼쳐놓습니다.저도 비슷한 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타협 없는 고집과 끝없는 잔소리가 버거워서 일부러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 시절 저는 그것을 ".. 2026. 8. 15. 일본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리뷰 (청춘 서사, 버블 경제, 이수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기억되는 건 언제일까요. 저는 2013년 작 〈요노스케 이야기〉를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규슈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청년의 이야기인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가 가슴 한구석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요노스케 이야기, 1980년대 도쿄, 버블 경제가 만들어낸 청춘의 풍경혹시 '버블 경제(Bubble Economy)'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화려한 네온사인, 넘쳐흐르는 소비,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자산 가격. 버블 경제란 실물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자산 가격 상승이 일정 기간 지속되다가 한순간에 붕괴되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전후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이었고, 이 영화는 .. 2026. 8. 15. 일본 영화 녹차의 맛 리뷰 (성장통, 마술적 사실주의, 이시이 카츠히토) 불안이 사라지길 바랄수록 오히려 더 커진다는 걸, 혹시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시이 카츠히토 감독의 2004년작 〈녹차의 맛〉은 그 역설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기묘하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가, 어느 순간 그냥 멍하니 울고 있었습니다.녹차의 맛,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시선, 그 정체는 자의식 과잉이었다막내딸 사치코를 괴롭히는 '거대한 자신의 환영'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치 중 하나입니다. 자의식 과잉(self-consciousness)이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생기는 심리적 부담감을 말합니다. 사치코의 환영은 바로 그 자의식이 몸을 얻어 시각화된 것입니다.저도 어릴 적 비슷한 감각을 알고 .. 2026. 8. 14. 일본 영화 사랑이 없는 연인들 리뷰 (결핍, 방어기제, 히키코모리) 시청률 4%대에 머물렀지만,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드라마였습니다. 2024년 1월 방영된 일본 드라마 〈사랑이 없는 연인들〉 이야기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를 기대하고 켰다가, 생각보다 훨씬 씁쓸하고 묵직한 이야기에 멈칫했습니다.사랑이 없는 연인들, 15년 만의 약속이 꺼낸 것, 각자의 연애 결핍드라마는 학창 시절 단 한 번 나눴던 약속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유마의 제안으로 세 친구는 15년 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런데 약속 당일 실제로 나타난 사람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 마사카즈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 디테일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15년이 지나도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이 정작 가장 무책임해 보이는 인물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오랜만에 모.. 2026. 8. 14. 일본 드라마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리뷰 (평행세계, 서사구조, 관계회복)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 사람을 못 보고 살았던 적, 혹시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회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도 압니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신작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 후회를 평행세계(Parallel World)라는 장치로 정면에서 들이밉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평행세계가 드러내는 것: 성공과 상실의 반비례 서사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된 리쿠는 마감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입니다. 연인 미나미가 옆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슈퍼문이 뜨던 밤, 미나미는 완성된 원고 옆에 홀로 남겨진 채 집을 나갑니다. 다음 날 아침 리쿠가 눈을 뜨자, .. 2026. 8. 13. 일본 영화 인간실격 리뷰 (가면, 신뢰, 자학적 낭만주의) 순수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망가진다는 말, 믿으시나요? 저는 한때 그 말을 위로처럼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인간실격〉을 보고 나서야, 그게 위로가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며 스러져 가는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아름답고도 불편한 기록입니다.인간실격, 가면과 소외, 요조가 선택한 '익살'이라는 생존법당신은 혹시 정말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 보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집단 안에서 겉돌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주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영화 속 요조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오바 요조는 유복한 의원 집안의 도련님으로 .. 2026. 8. 13. 이전 1 ··· 3 4 5 6 7 8 9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