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아수라 리뷰 (가족의 위선, 블랙코미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 모임 자리에서 오랫동안 존경하던 어른의 비밀이 한순간에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는데, 그 순간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화목했던 집안이 한 꺼풀 벗겨지자 불신과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79년 일본 한 가족의 민낯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영화 은, 바로 그 기억을 고스란히 건드렸습니다.아수라, 아버지의 외도, 그리고 네 자매의 위태로운 연대1979년 겨울, 평범해 보이던 한 가족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넷째 키코, 첫째 타키코, 둘째 마키코, 셋째 츠나코까지 개성 강한 네 자매는 우연한 계기로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어린아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생을 헌신해 온 어머니가 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집..
2026. 6. 24.
일본 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리뷰 (신분 사칭, 정체성 상실, 다중 시점)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한때 온라인에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척한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범죄는 아니었지만,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실제보다 훨씬 그럴듯한 저를 올려두었고, 그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묘한 공허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타인의 신분을 사고팔다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의 시놉시스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온라인 신분 세탁, 생각보다 훨씬 정교한 범죄였습니다영화 속 타쿠야와 마모루가 벌이는 범죄의 구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이른바 소셜 엔지니어링(Social Engineering) 기법을 체계적으로 활용한 고도의 심리 조작 범..
2026. 6. 23.
일본 영화 굿바이 (염습의 미학, 직업 귀천, 용서의 강요)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다룬 영화가, 실은 죽음 앞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면 어떨까요. 제8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작 영화 굿바이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도 어딘가 손쉽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달려온 20대를 지나 30대의 문턱에서 맞닥뜨린 이 영화는, 제가 그동안 덮어두었던 몇 가지 불편한 질문들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굿바이, 염습의 미학, 고인의 마지막을 예술로 빚는 납관사의 손영화의 핵심은 납관(殮襲)이라는 행위에 있습니다. 납관이란 고인의 시신을 정결하게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모시는 일련의 장례 의례를 뜻합니다. 서양의 에임밍(embalming), 즉 방부 처리 중심의 장례 문화와 달리, 일..
2026.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