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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32

일본 영화 아수라 리뷰 (가족의 위선, 블랙코미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 모임 자리에서 오랫동안 존경하던 어른의 비밀이 한순간에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는데, 그 순간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화목했던 집안이 한 꺼풀 벗겨지자 불신과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79년 일본 한 가족의 민낯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영화 은, 바로 그 기억을 고스란히 건드렸습니다.아수라, 아버지의 외도, 그리고 네 자매의 위태로운 연대1979년 겨울, 평범해 보이던 한 가족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넷째 키코, 첫째 타키코, 둘째 마키코, 셋째 츠나코까지 개성 강한 네 자매는 우연한 계기로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어린아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생을 헌신해 온 어머니가 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집.. 2026. 6. 24.
일본 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리뷰 (신분 사칭, 정체성 상실, 다중 시점)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한때 온라인에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척한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범죄는 아니었지만,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실제보다 훨씬 그럴듯한 저를 올려두었고, 그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묘한 공허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타인의 신분을 사고팔다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의 시놉시스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온라인 신분 세탁, 생각보다 훨씬 정교한 범죄였습니다영화 속 타쿠야와 마모루가 벌이는 범죄의 구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이른바 소셜 엔지니어링(Social Engineering) 기법을 체계적으로 활용한 고도의 심리 조작 범.. 2026. 6. 23.
일본 영화 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 리뷰 (CODA, 수어, 신파) 부모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이야기, 우리는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 '당연함'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 소리와 침묵이 공존하는 세계, 다이짱의 성장 배경영화 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는 일본 미야기현의 조용한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다이짱(다이수케)은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 즉 CODA입니다. 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쉽게 말해 들리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동시에 살.. 2026. 6. 23.
일본 영화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 리뷰 (온기, 젠트리피케이션, 서정성) 스무 살의 소녀가 연고 없는 도쿄에 홀로 내던져졌을 때, 그녀가 도착한 곳은 낡은 대중탕이었습니다. 나카가와 류타로 감독의 2024년작 인디 영화 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첫 장면부터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습니다.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 상실과 낯섦 속에서 찾은 온기일반적으로 일본 인디 영화는 "잔잔하고 감성적이다"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단순한 힐링 무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상 밖이었습니다.주인공 미오는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홀로 남겨진 뒤, 아버지의 지인인 엔도가 운영하는 대중탕 '히노데탕'에서 시급 985엔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시용 기간(試用期間)이란 정식 고용 전 근로자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 2026. 6. 22.
일본 영화 4월 이야기 (벚꽃 미학, 짝사랑 서사, 이와이 슌지) 상영 시간 67분. 일반 장편 영화의 절반 남짓한 러닝타임에, 대사는 극도로 적고 음악이 대부분을 채우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8년 작 입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문득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무언가를 순수하게 열망했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 저는 종종 이 영화를 꺼냅니다.4월 이야기, 67분이 담아낸 벚꽃 미학과 짝사랑 서사는 홋카이도 출신 신입생 우즈키가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됩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이삿짐을 정리하고, 어색한 신입생 환영회에서 자기소개를 버벅이고, 새 자전거를 타고 봄바람을 마시며 서점을 찾아 헤매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게 단순히 예쁜 화면을 나열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낯선 도시에 홀로 던져진 사람 특유의 .. 2026. 6. 20.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개연성, 스노비즘, 캐릭터 붕괴) 취향이 데칼코마니처럼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인디 밴드 티셔츠를 입고 같은 구석 자리 책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다 울음이 터지는 타이밍조차 똑같았던 그 사람과 저는 취향이라는 언어 하나로 세상과 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그 기억을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막차가 만들어낸 사랑, 그 설레는 개연성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또 운명적 첫 만남 로맨스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키누와 무기가 막차를 놓친 역전에서 처음 대화를 시작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 판단을 거뒀습니다.이 영화의 가장 강한 힘은 내러티브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에 있습니다... 2026.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