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이야기, 우리는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 '당연함'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 소리와 침묵이 공존하는 세계, 다이짱의 성장 배경
영화 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는 일본 미야기현의 조용한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다이짱(다이수케)은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 즉 CODA입니다. CODA란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쉽게 말해 들리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자녀를 가리킵니다.
다이짱은 아홉 살 여름부터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세상의 소리를 수어로 엄마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아 왔습니다. 수어(手語)란 손의 모양, 위치, 움직임을 조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 체계입니다. 다이짱은 친구들 앞에서 "좋아, 싫어"라는 수어를 가르쳐주고,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며 천진하게 웃는 소년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이 영화가 그저 따뜻한 성장 이야기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균열이 생깁니다. 동네 이웃의 꽃을 짓밟았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엄마는 비장애인 이웃들 앞에서 제대로 된 변호 한마디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었습니다. 소통의 구조적 불균형이 한 아이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파고드는지가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국내 청각장애인 현황과 관련하여, 청각 및 언어장애인은 2023년 기준 약 42만 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며, 이들 가정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의 심리적 부담에 대한 연구와 지원 체계는 아직 매우 미흡한 상황입니다.
도쿄에서 찾은 자기 언어, 그리고 CODA가 마주한 정체성
성장통을 견디지 못한 다이짱은 결국 도쿄로 상경합니다. 거대한 도시에서 파칭코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집자의 꿈을 키우는 그의 모습은, 부모의 목소리를 대신하던 '통역사'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출판사 면접 자리였습니다. "경험은 전혀 상관없다, 쓰는 것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좋아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답하는 다이짱. 그 짧은 한 마디가 왜 그렇게 묵직하게 느껴졌는지, 지금도 곱씹게 됩니다.
도쿄에서 다이짱은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수어를 배우고 교류하는 서클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서클은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 냅니다. "들리지 않는 친구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평범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다이짱에게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침묵의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배우고 싶은 세계라는 역설이었으니까요.
이 영화가 다루는 CODA의 심리적 갈등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역할 역전(Role Reversal)이라고 표현합니다. 역할 역전이란 부모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소통 역할을 자녀가 대신 수행하게 되는 현상으로, 장기적으로는 자녀의 자아 발달과 정서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CODA 당사자들의 수기와 연구 사례를 보면, 통역 경험이 일찍 시작될수록 정체성 혼란과 죄책감을 동시에 경험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됩니다.
다이짱이 "친구들은 다 부모와 상담하고 있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도와준 적 없잖아"라고 폭발하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반항이 아닙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게 얼마나 오래된 피로감의 폭발인지를 느꼈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이짱이 도쿄에서 겪는 변화를 핵심 흐름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모의 통역사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직업 정체성을 탐색하기 시작
- 서클 활동을 통해 침묵의 세계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재발견
- 할머니의 투병 소식을 계기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감정을 재정립

신파적 장치가 아쉬운 이유, 코다 서사의 한계와 가능성
후반부에서 이 영화는 정맥류(Varix) 파열로 쓰러진 할머니를 등장시킵니다. 정맥류란 혈관 벽이 약해지며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정맥을 말하는데, 복부 정맥류 파열은 응급 수술이 필요한 위중한 상황입니다. 이 극적인 의료적 사건을 계기로 다이짱은 급히 귀향하고, 그동안 자신에게 걸려왔던 '무언전화'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할머니가 전화기 너머로 손자의 목소리를 귀가 들리지 않는 며느리 아키코에게 전해주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실제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하는 씁쓸함이 뒤따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입니다. 감동은 분명히 있었는데, 그 감동이 이야기 자체의 힘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감독이 끼워 넣은 신파적 장치 덕분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웠거든요.
가족 간의 소통 단절과 CODA의 내면적 갈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 영화는 결국 '가족의 위기'라는 전형적인 서사 문법에 기댔습니다. 서사 문법이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에 관한 약속된 패턴을 말하는데, 일본 휴먼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죽음이나 병을 통한 화해'가 바로 그 대표적인 패턴입니다. 다이짱이 겪어온 사회적 고립과 역할 역전의 피로감이 진지하게 해부되기보다는,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로 감정적으로 봉합되어 버린 느낌이 지웠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CODA라는 존재를 스크린으로 이렇게 진지하게 들여다본 작품이 얼마나 됩니까. 오히려 이 영화의 한계가 선명하게 보일수록, 코다 서사가 앞으로 어떻게 더 깊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도 함께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소통'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리가 없어도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닿음이 결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저처럼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그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수어나 청각장애 가족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분이라면, 이 영화를 입문으로 삼아보시되 그 너머의 이야기들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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