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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고독사, 죽음의 미학, 일상의 치유)

by 무비체커 2026. 6. 18.

고독사로 발견된 아버지의 유골을 아들이 오징어 젓갈 통에 담아두는 영화가 있습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직접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 경계 어딘가에 정확히 서 있다는 것을.

강변의 무코리타, 고독사 공포가 저를 이 영화로 이끌었습니다

한때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타인과의 연락을 모두 끊고 좁은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 시절, 저를 가장 괴롭혔던 공포는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죽는 건 아닐까." 지독하게 외로운 상실감 속에서도 그 두려움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고독사(孤獨死)란 혼자 생활하다가 주변과 단절된 상태에서 사망하는 것을 가리키며, 시신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23년 기준 35.5%를 돌파했습니다. 이 숫자가 곧 고독사 위험군의 규모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영화 속 야마다의 아버지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기 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는 과거를 숨긴 채 작은 어촌 마을 오징어 젓갈 공장에 흘러들어온 청년 야마다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목적도 의지도 없이 어쩌다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그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것처럼, 야마다도 그냥 흘러가다 멈춘 것뿐이었죠. 그런 야마다에게 고독사한 아버지의 유골 인수 연락이 옵니다. 이 출발점이 저에게는 묘하게 낯설지 않았고, 그래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48분의 변화가 죽음을 일상으로 길들입니다

영화 제목인 무코리타는 불교 시간 단위에서 온 말입니다. 무코리타(牟呼栗多, muhūrta)란 하루의 30분의 1, 즉 약 48분에 해당하는 시간 단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아주 짧지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을 형상화한 철학적 개념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서사 전체의 뼈대로 삼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다루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고독사, 유골, 자살 방지 전화인 생명의 전화, 태풍에 잃은 자식의 기억. 이 모든 음침한 소재들이 갓 지은 흰쌀밥 냄새, 짭조름한 오징어 젓갈, 수박 한 조각, 함께 먹는 스키야키(すき焼き, 소고기 전골)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스키야키란 일본의 대표적인 냄비 요리로, 얇게 썬 소고기와 채소를 달콤 짭짤한 와리시타 소스에 조리하는 겨울 음식입니다. 6개월 치 집세를 밀린 묘석 방문 판매원 미조구치가 반년 만에 200만 엔짜리 묘석을 팔고 아들과 함께 이 스키야키를 끓이는 장면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실은 이 정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죽음의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독사: 아버지가 홀로 발견된 사건, 목욕 후 반쯤 마신 우유와 함께
  • 자살 가능성: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반복 통화한 번호가 생명의 전화였다는 사실
  • 비의도적 상실: 시마다가 태풍으로 아들을 잃은 사연
  • 소소한 죽음: 미나미 딸의 금붕어가 죽고, 이웃들이 함께 땅에 묻어주는 장면

제가 가장 묵직하게 받아들인 장면은 고독사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고독사로 발견되는 사람들은 대개 문 쪽을 향해 쓰러져 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가려 했던 흔적이라는 해석이었죠. 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에는 문 안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상을 등지는 몸의 방향. 이 디테일 하나가 저에게는 어떤 긴 대사보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보건복지부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고독사 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22년 기준 3,378명이 고독사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영화 속 야마다가 유골 인수처에서 본 '1년간 찾는 이 없으면 공동묘지로 가는 무연고 유골들'의 풍경은 그래서 더 이상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따뜻하지만 불편한 것들, 영화가 숨긴 균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힐링 무비'라는 수식어로 소비되는 방식이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시마다라는 인물을 예로 들면, 그는 온수기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처음 본 이웃 야마다의 집에 목욕을 하러 찾아오고,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고, 밥상에 반찬을 얹어 숟가락을 걸칩니다. 오지랖(他人の世話を焼くこと,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에 끼어드는 행동)이라는 표현은 일본어로 오세와(お世話)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현실에서 이 행동은 그냥 침입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이를 '시골 마을의 정'이라는 낭만적 필터로 감싸지만, 제 경험상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절대적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에 이런 식의 무단 침입은 온기가 아니라 폭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야마다가 결국 시마다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불쾌감을 야마다가 구체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서사적 밀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부분을 비와 절간과 아이스크림으로 슬쩍 뭉갭니다.

인물들의 전사(前史, backstory)를 생략하는 방식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사란 영화나 소설에서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인물에게 일어난 사건과 경험을 가리키는 서사 용어입니다. 야마다가 왜 전과자가 되었는지, 시마다의 아들이 정확히 어떻게 태풍에 목숨을 잃었는지, 이 두 가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태풍 밤 두 사람이 함께 구구단 7단을 거꾸로 외우며 공포를 극복하는 장면의 감정적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제 경험상 이야기에서 생략은 때로 여백의 미가 되지만, 감정적 설득력의 토대가 되는 맥락을 생략하는 것은 단순한 불친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공장 사장님의 말, "5년, 10년이 지나봐야 지금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그 문장이 저에게는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무코리타, 오늘 하루의 48분. 10년 후가 달라지려면 오늘의 48분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이 단순한 논리가, 저를 한때 옥죄었던 고독사의 공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만든 것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밥상 옆에 자연스럽게 앉혀 두는 이 영화의 태도는, 한 번쯤 고독을 깊이 겪어본 사람이라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강변의 무코리타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는 오후에 혼자 보시기를 권합니다. 단, 보고 나서 혼자 밥을 먹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참고: https://youtu.be/Nwdg3HYxHPU?si=3L8pN6INsoK-J_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