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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17

일본 영화 남은 인생 10년 리뷰 (시한부 로맨스, 탐미주의, 신파 공식) 시한부 환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고 나서 정작 제 자신이 부끄러워진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2022년작 을 보고 나서, 멀쩡히 살아 숨 쉬면서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제 일상이 낯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실제 시한부 삶을 산 원작 작가의 자전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유한한 삶 위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때로는 과잉되게 담아냅니다.남은 인생 10년, 벚꽃 아래 시작된 카운트다운 — 이 영화를 고른 진짜 이유저는 학생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강박 속에서 독기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된 지금은 묘하게 두 극단 사이를 오갑니다. 일할 때는 무거운 현실을 짊어진 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쉬는 날에는 지독하게 무.. 2026. 6. 20.
일본 영화 굿바이 (염습의 미학, 직업 귀천, 용서의 강요)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다룬 영화가, 실은 죽음 앞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면 어떨까요. 제8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작 영화 굿바이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도 어딘가 손쉽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달려온 20대를 지나 30대의 문턱에서 맞닥뜨린 이 영화는, 제가 그동안 덮어두었던 몇 가지 불편한 질문들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굿바이, 염습의 미학, 고인의 마지막을 예술로 빚는 납관사의 손영화의 핵심은 납관(殮襲)이라는 행위에 있습니다. 납관이란 고인의 시신을 정결하게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모시는 일련의 장례 의례를 뜻합니다. 서양의 에임밍(embalming), 즉 방부 처리 중심의 장례 문화와 달리, 일.. 2026. 6. 20.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운명적 사랑, 희생의 미화, 타임슬립)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했지만 제 병약함과 부족함이 짐이 될까 봐 스스로 관계를 끊어낸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이 너무 아팠던 탓에, 비슷한 감정선을 건드릴 것 같은 영화는 자꾸 미루게 됩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2004년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결국 꺼내든 건, 그 오래된 부채감과 한번쯤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서였습니다.지금 만나러 갑니다, 비의 계절이 오면 엄마가 돌아온다, 기적 같은 이야기의 시작아내 미오를 먼저 떠나보내고 지병을 안은 채 어린 아들 유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타쿠미. 그 설정 하나만으로 저는 이미 심장이 조금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가장 힘든 건 상대방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 없이 하루를 살아내.. 2026. 6. 19.
일본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청량함, 낭만화, 공동체) 시골살이를 한 번이라도 동경해 본 적 있다면, 이 영화는 그 감정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립니다. 저도 번아웃이 극에 달했던 시절 무작정 시골로 한 달을 내려간 적이 있고, 그때 품었던 귀촌 판타지와 뒤따라온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계속 떠올렸습니다.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도시 소년이 시골로, 그 설정이 담고 있는 것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2007년작 은 전교생이 6명에 불과한 일본의 한 분교 마을에 도쿄 출신 소년 오사(오카다 마사키)가 전학 오면서 시작됩니다. 중학교 2학년 소녀 소요(카호)는 태어나 처음으로 같은 학년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에 들뜨지만, 오사는 첫날부터 마을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내뱉으며 소요의 속을 뒤집어놓습니다.영화의 서사 구조를 영화학 용어로 분류하자.. 2026. 6. 19.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 (절제 연출, 복지 사각지대, 방관) 사회 초년생 시절, 저는 보증금이 빠듯해 도심 변두리의 낡은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에 자취방을 얻었습니다. 얇은 벽 너머로 가끔 아이들의 기척이 들려왔고, 낮이고 밤이고 어른의 목소리 대신 TV 소리와 컵라면 냄새만 흘러나오던 옆집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했을 때, 그냥 고개를 돌렸던 제 자신이 그 어떤 가해자보다 더 낯설고 무서웠습니다.아무도 모른다, 담담한 카메라가 가장 잔인한 이유 — 고레에다의 절제 연출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로 일본에서 발생한 '스구모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엄마에게 버려진 네 남매가 좁은 아파트 안에서 스스로를 지워가며 생존해야 했던 이야기를 다룹니다.제가 처음 이 영화.. 2026. 6. 19.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개연성, 스노비즘, 캐릭터 붕괴) 취향이 데칼코마니처럼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인디 밴드 티셔츠를 입고 같은 구석 자리 책을 손에 들고 영화를 보다 울음이 터지는 타이밍조차 똑같았던 그 사람과 저는 취향이라는 언어 하나로 세상과 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그 기억을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막차가 만들어낸 사랑, 그 설레는 개연성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또 운명적 첫 만남 로맨스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키누와 무기가 막차를 놓친 역전에서 처음 대화를 시작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 판단을 거뒀습니다.이 영화의 가장 강한 힘은 내러티브 개연성(narrative plausibility)에 있습니다... 2026.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