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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본 영화 유리고코로 리뷰 (액자식 구성, 서사적 면죄부, 모성애 반전)

by 무비체커 2026. 7. 19.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살인을 소재로 한 일본 미스터리 영화가 모성애와 구원을 얘기할 수 있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마타 마호카루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2017년작 유리고코로는, 감정 결핍을 지닌 한 여성의 잔혹한 살인 연대기와 그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인간의 내면에 웅크린 어둠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저도 유년 시절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혼자 어두운 방에서 기묘한 상상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작품이 묘하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액자식 구성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균열

유리고코로는 액자식 구성(Frame Narrative)을 핵심 서사 장치로 삼고 있습니다. 액자식 구성이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중첩되어 들어가는 구조로, 독자 혹은 관객이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가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주인공 료스케가 아버지 서재의 장롱 깊숙한 곳에서 빛바랜 노트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두 개의 층위로 나뉩니다. 현재의 료스케와, 노트 속에 기록된 살인마 미사코의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초반에는 꽤 영리하게 작동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노트를 읽는 료스케의 얼굴과 노트 속 미사코의 행동이 번갈아 화면에 나타나면서, 관객은 마치 함께 노트를 들여다보는 공범이 되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 미사코가 우물에 달팽이를 집어넣으며 기묘한 평온을 얻고, 결국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지 않는 장면들은 소시오패시(Sociopathy)적 인격 형성 과정을 꽤 냉정하게 묘사합니다. 소시오패시란 공감 능력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유년기 애착 결핍이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왔습니다. 아동기 트라우마와 성인기 폭력 행동 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들은 꾸준히 발표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동기 역경 경험이 성인기 정신건강 문제 및 반사회적 행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미사코의 형성 과정은 단순한 악인 설정이 아니라, 어딘가 씁쓸한 개연성을 지닌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핵심 서사 장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액자식 구성: 현재의 료스케와 과거의 미사코가 교차하며 긴장을 유지
  • 노트라는 매개체: 독자이자 아들인 료스케를 관객의 대리인으로 기능하게 함
  • 유리고코로(요리도코로) 오해: 단 하나의 잘못 들은 단어가 한 인간의 평생을 규정하는 비극적 출발점

    서사적 면죄부, 그 편의주의의 균열

이 영화를 놓고 "잔혹한 살인을 모성애로 미화했다"는 시각도 있고, "인간 내면의 어둠을 구원으로 승화시킨 수작"이라는 평도 있는데, 저는 솔직히 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지점입니다.

미사코는 어린 소년을 하수구에 빠뜨려 죽였고, 직장 상사를 사무실에서 살해했으며, 협박범을 독살했습니다. 그녀는 분명한 연쇄 살인범입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는 아들의 약혼녀를 납치한 야쿠자 일당을 홀로 도륙하는 다크 히어로로 재탄생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서사적 면죄부(Narrative Absolution)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서사적 면죄부란 가해자의 이후 행동이나 감정을 통해 과거의 범죄가 어느 정도 용서받거나 희석되는 서사 구조를 가리킵니다.

제가 불편했던 건, 미사코의 칼날에 쓰러진 피해자들의 이름이 영화 안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피해자학(Victimology) 관점에서 보면 이는 심각한 서사적 불균형입니다. 피해자학이란 범죄 피해자가 경험하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피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미사코가 살해한 사람들의 가족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영화는 철저히 외면합니다. 오직 살인자의 아들이 받은 충격과, 살인자가 느끼는 죄책감과, 살인자가 마침내 아이를 낳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만이 화면을 채웁니다.

국내 범죄 피해자 지원과 관련된 연구들도 피해자 중심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운영되는 피해자 지원 제도들은 바로 이러한 서사적 불균형을 현실에서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그런 현실을 알고 나면, 이 영화가 가해자 중심의 감동 서사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불편함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질문으로 바뀝니다.

모성애 반전이 남긴 서늘한 여운과 연출의 패착

반전 결말에 대해서는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었다"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호소야가 사실 미사코였다는 반전은, 초반부터 차근차근 노트를 읽어 온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반전을 성립시키기 위해 성형수술이라는 장치를 동원했다는 점입니다. 이 설정은 서늘하고 문학적인 미스터리로 흘러가던 영화의 톤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립니다.

후반부 야쿠자 아지트 난투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가 즐비한 현장에 도착한 료스케가 마치 어머니의 압도적인 살인 능력에 경외감을 느끼는 듯 묘사되는 장면은, 살인 행위 자체를 모성애의 위대한 발현으로 포장하는 연출적 선택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원작이 갖고 있었다는 촘촘한 내면 묘사와 심리적 밀도가, 이 장면 하나에서 상당 부분 허물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 자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비극적 서사를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와 해방감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제시했습니다. 유리고코로가 불완전한 영화임에도 관객에게 서늘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바로 이 카타르시스적 감정 해소를 어느 정도 자극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요리도코로(의지할 곳)"를 "유리고코로"로 잘못 들은 그 한 마디가 한 인간의 평생을 뒤흔들었다는 설정은, 언어의 오해가 어떻게 한 사람의 정체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경고로 읽힙니다.

영화 유리고코로는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뚜렷하고, 윤리적 관점에서도 불편한 선택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결핍과 모성이라는 이 낯선 조합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병실 장면에서 수십 년을 돌아 손을 맞잡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을 건드린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이 궁금하신 분들께, 비판적인 시선을 함께 장착하고 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bwwWqsTIytI?si=7kbOIXUtc9X-A65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