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일본 영화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 리뷰 (온기, 젠트리피케이션, 서정성)

by 무비체커 2026. 6. 22.

스무 살의 소녀가 연고 없는 도쿄에 홀로 내던져졌을 때, 그녀가 도착한 곳은 낡은 대중탕이었습니다. 나카가와 류타로 감독의 2024년작 인디 영화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첫 장면부터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 상실과 낯섦 속에서 찾은 온기

일반적으로 일본 인디 영화는 "잔잔하고 감성적이다"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단순한 힐링 무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인공 미오는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홀로 남겨진 뒤, 아버지의 지인인 엔도가 운영하는 대중탕 '히노데탕'에서 시급 985엔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시용 기간(試用期間)이란 정식 고용 전 근로자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미오는 이 2주간의 시용 기간조차 낯설고 서툴기만 한 신입으로 묘사됩니다. 그 서툶이 오히려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처음 낯선 도시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모든 대화가 어색하고, 모든 동선이 눈치 보이던 시절. 미오가 손님의 컴플레인 앞에서 "정말 죄송했습니다"를 반복하는 장면은, 사과의 말을 한 번도 내 것처럼 느껴보지 못한 채 내뱉던 제 초반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히노데탕을 찾는 주민들은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옵니다. 치매 증세로 남탕을 서성이는 노인, 매달 딸이 회수권을 대량으로 구매해주는 할머니, 영화감독을 꿈꾸며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쥔 청년 아키라. 이 공간은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내러티브 치료(Narrative Therapy)의 공간처럼 기능합니다. 내러티브 치료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심리적 접근 방식인데, 미오는 이 대중탕 안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흡수하며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재구성해 갑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실, 낭만으로 덮은 비극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느낀 지점은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심 재개발로 인해 기존 저소득층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으로, 도시 사회학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구조적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디 영화가 이 소재를 다루면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을 담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의외로 그 기대를 저버린다고 느꼈습니다. 히노데탕과 주변 골목이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허물어지는 상황을 영화는 "형체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말만은 계속 남는다"는 시적 구절 하나로 감싸 안습니다.

실제로 서울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 지역에서 기존 소상공인의 75% 이상이 원래 자리를 떠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치로 보면 이건 감성적 위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느끼기에,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맹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히노데탕이 사라진 후 엔도의 생계 문제는 화면 밖으로 지워진다
  •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의 구체적인 현실은 묘사되지 않는다
  • 약자들의 연대나 저항은 서사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 미오의 정서적 성장을 위한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주변 인물들

주민들의 이주와 철거는 "낡았으니까요"라는 한 마디로 수용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어떤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현실을 황혼의 미학으로만 포장하는 것은, 그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위로일 수 있습니다.

서정성의 아름다움과 서사적 밀도의 한계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완전히 놓쳐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정성(lyricism), 즉 문학이나 영상에서 감정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조형하는 미학적 특질에서만큼은 이 작품이 뛰어난 완성도를 보입니다.

아키라가 미오에게 선물한 필름 카메라는 이 영화의 핵심 오브제입니다. 필름 카메라는 현상(現像) 전까지 결과물을 알 수 없는 매체입니다. 현상이란 촬영된 필름에 약품을 처리해 이미지를 가시화하는 과정인데, 이 불확실성이 미오의 도쿄 생활 자체를 은유합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며 천천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삶. 그 은유만큼은 진심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미장센(Mise-en-scène)에 치중한 연출이 서사적 밀도를 약화시킨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 합니다. 미장센이란 한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들, 즉 조명, 구도, 배우의 위치, 소품 등을 총체적으로 조율하는 감독의 연출 언어를 가리킵니다. 이 영화는 미장센이 아름답지만, 그만큼 인물 간의 갈등과 서사 전개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영상 콘텐츠 소비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런 호흡이 어떤 관객에게는 큰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코리아의 시청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한국 사용자의 평균 영화 이탈 시점은 시작 후 15분 이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전반부 전개 속도를 감안하면, 넓은 관객층에 닿기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나는 빛을 움켜쥐고 있어>는 분명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름다움이 때로는 불편한 현실을 가리는 데 쓰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사라진 자리에서도 사람은 무언가를 쥐려 한다는 메시지는 분명히 유효합니다. 다만 그 '쥠'이 구조적 문제에 눈을 감은 채 이루어진다면, 손바닥을 폈을 때 정말 텅 비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조용하고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을 원하는 분이라면 그 기대치는 조금 낮추고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pxoo5rdgcnE?si=HIns6zQDEBGKRH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