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일본 영화 괴물 리뷰 (확증 편향, 다면적 서사, 사각지대)

by 무비체커 2026. 7. 11.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학창 시절 한 친구를 주변의 소문만 믿고 함부로 판단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의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부끄럽기보다 무서웠습니다. 제가 만들어낸 편견이 실제 폭력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은 바로 그 무서움을 세 개의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하나의 사건, 세 개의 진실 — 영화가 설계한 확증 편향의 함정

영화는 타오르는 빌딩 화재를 바라보는 엄마 사오리와 아들 미나토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서사는 엄마, 담임 교사 호리, 그리고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으로 세 번 반복되며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보여줍니다. 이 구조는 영화학에서 흔히 다중 시점 서사(Multi-Perspective Narrative)라 부릅니다. 여기서 다중 시점 서사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교차 서술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진실'이 얼마나 주관적으로 구성되는지를 체험하게 만드는 서사 기법입니다.

이 기법을 가장 먼저 영화적으로 완성한 작품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입니다. 사무라이, 아내, 산적의 엇갈린 진술로 진실을 흐릿하게 만든 그 영화처럼, <괴물>도 관객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제가 처음 엄마 사오리의 시점으로 영화를 볼 때, 호리 선생을 폭력 교사로 의심하는 데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습니다. 그게 이 각본의 무서운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등장합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결론에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합니다. 사오리는 아들이 다쳤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학교가 가해자라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증거를 맞춰 나갑니다. 문제는 관객도 그 편향에 함께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각 시점마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는 부분입니다. 사오리의 파트는 컷과 장면 전환이 빠르고, 호리의 파트는 조금 느슨하며, 소년들의 파트는 맨홀 뚜껑에 귀를 대는 장면처럼 목적 없이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이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시간 감각으로 작동하는지를 편집 리듬으로 표현한 것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미장센(Mise-en-scène) 연출입니다. 미장센이란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구도, 배우의 위치, 소품까지를 통해 감독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언어입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게 관객의 인지를 조종하는지, 한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막(사오리 시점): 관객이 학교와 호리 선생을 가해자로 인식하도록 유도
  • 2막(호리 시점): 미나토가 거짓말쟁이였음이 드러나며 관객의 판단이 뒤집힘
  • 3막(소년 시점): 모든 오해의 근원이 두 소년이 지키려 한 비밀이었음이 밝혀짐

교장이라는 불완전 연소 — 각본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한 캐릭터는 사실 교장입니다. 그녀는 손주를 주차장에서 자기 차로 치어 죽게 했고, 그 죄를 남편에게 뒤집어씌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나토의 거짓말을 유일하게 간파한 어른이면서도, 자신도 같은 거짓말쟁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추궁하지 못합니다.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은 이 교장의 시점만 의도적으로 차단합니다. 관객은 사오리의 분노 어린 눈을 통해서만 교장을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인간 이하의 관료적 괴물'로 단정짓게 됩니다. 이것이 각본이 설치한 가장 정교한 함정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각본가가 다소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관객의 맹점을 확인하기 위한 서사적 트릭에 교장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소비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이런 설계가 필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교장의 시점을 열어두지 않음으로써, 관객 스스로가 "나 역시 판단을 성급하게 내렸다"는 자각을 경험하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저는 이 두 시각이 모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도는 탁월했지만, 그 의도를 위해 교장이라는 인물의 서사적 밀도가 희생된 측면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청소년의 정체성 혼란, 특히 성 정체성을 둘러싼 서사는 현실에서도 매우 민감하고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국내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은 비성소수자 청소년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이 수치는 미나토와 요리가 자신들의 감정을 "괴물"로 인식하며 폐전철에 숨어드는 장면이 단순한 영화적 은유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영화가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은하철도식 초월적 공간으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 저는 아름답다는 감정과 아쉽다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엔딩이 남긴 질문 — 구원인가, 회피인가

폭풍우 속에서 두 소년이 폐전철 안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시퀀스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직접적으로 참조합니다. 여기서 오마주(Homag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오마주란 선행 예술 작품에 대한 경의를 담아 그 모티브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재해석하여 담아내는 창작 방식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1934년 발표된 겐지의 동화에서 모자가정의 소년 조반니와 부유한 집안의 캄파넬라 구도를 미나토와 요리에게 겹쳐놓은 것은 명백한 의도입니다.

그러나 이 엔딩을 둘러싸고 보는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빗속을 달리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해방감과 희망을 읽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장면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와서 걸으면서 점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 속의 제도나 어른들의 변화가 아닌, 자연과 환상 속으로의 탈출로 두 아이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이 결국 사회적 문제를 낭만화한 봉합이 아닌지, 그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크린 속 괴물과 현실의 괴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영화학회는 다중 시점 서사가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 서사적 책임을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괴물>이 던지는 핵심 질문, 즉 "괴물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영화가 끝나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빈자리를 관객 스스로의 사각지대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채우도록 설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힘이 되는 드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누군가와 함께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인물을 '괴물'로 지목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차이가 바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에는 영화를 본 다음 날, 오래 전에 오해했던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하지 못했지만요.


참고: https://youtu.be/c60sMtjTK2s?si=5n_xjUQup_nE36V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