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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만 영화 장난스런 키스 리뷰 (첫 만남, 계급 로맨스, 여성상 비판)

by 무비체커 2026. 6. 27.

IQ 200의 천재와 전교 꼴찌의 사랑. 설정만 보면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학창 시절 저의 부끄러운 기억이 자꾸만 겹쳐져서 도무지 거리를 둘 수가 없었습니다. 대만 영화 장난스런 키스는 일본 순정만화 이타즈라나 키스를 원작으로 한 프랭키 천 감독의 청춘 로맨스로, 달콤한 외피 안에 꽤 복잡한 감정과 불편한 질문들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장난스런 키스, 입학식 날의 충돌, 그리고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

혹시 학교 다닐 때 그런 사람 있지 않았습니까? 같은 건물 안에 있는데도 도저히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 그냥 존재만으로 기압차가 느껴지는 사람. 신입생 위안샹친이 입학식 날 복도에서 맞닥뜨린 장즈수가 딱 그런 존재입니다.

사립 둥난고등학교는 학생들을 IQ와 성적에 따라 A반부터 F반까지 엄격하게 분류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반 편성이 아니라 명백한 위계 구조입니다. 영화 속 학교는 A반 학생들의 학업 집중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반 학생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데, 이는 교육 사회학에서 말하는 트래킹(tracking) 시스템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트래킹이란 학생의 능력을 일찍 범주화하여 분리 교육함으로써 계층 이동 가능성을 제한하는 교육 방식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학업 격차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착시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도 비공식적으로 '잘하는 애들 반'이 있었고, 그 경계를 넘는 것은 괜한 민폐를 끼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샹친이 3년 동안 즈수의 뒷모습만 훔쳐보며 마음을 키웠다는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

소방 훈련을 이용해 A반 교실에 잠입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통쾌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설레는 침입이 "절대 없어"라는 즈수의 차가운 한 마디로 끝나고, 그날 밤 집까지 무너져 버리는 이중의 추락은 꽤 잔인한 연출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웃음보다 먼저 뜨끔함이 왔습니다. 용기 내어 마음을 전했다가 처참하게 짓밟힌 기억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입니다.

츤데레 서사의 문법과 그 이면에 있는 불편한 구조

영화가 본격적으로 재미를 얻는 건 두 사람이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즈수가 샹친에게 내건 동거 조건, 기억하십니까? 학교에서 아는 척하지 말 것, 고백했던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 것. 이 조건들은 단순한 선긋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통제하는 행동 양식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츤데레(つんでれ) 캐릭터의 전형적인 문법으로 포장합니다. 여기서 츤데레란 겉으로는 차갑고 거만하게 굴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감정을 품고 있는 캐릭터 유형을 지칭하는 일본 서브컬처 용어입니다. 왕대륙은 이 역할을 탁월하게 소화합니다. 밤새 초등학생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고도 무심한 척 돌아서는 장면, SNS 게시물을 샹친만 볼 수 있게 설정해두었다는 반전은 관객의 심장을 제대로 공략합니다. 솔직히 저도 그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심박수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화면에서 눈을 조금 떼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즈수가 샹친을 대하는 방식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부를 수 있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판단력을 흔들고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조종 행위를 뜻합니다. 공개석상에서 인격을 짓밟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습 키스를 감행하고, 아버지가 쓰러진 위기 상황에서 샹친에게 감정적으로 가장 상처를 주는 말을 골라 퍼붓는 일련의 행동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영화는 그것을 즈수의 내면적 결핍과 압박으로 맥락화하지만, 맥락이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즈수의 모진 말에 상처받은 샹친이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은 오히려 가장 샹친답고 주체적인 순간인데, 영화는 그 결정을 '포기'이자 '현실의 패배'로 규정하고 결국 즈수의 청혼으로 보상받아야 완성되는 서사로 마무리 짓습니다.

장난스런 키스 서사가 답습하는 문제적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주인공의 진로(간호학과 진학)가 자신의 꿈이 아닌 남주인공의 곁에 머물기 위한 수단으로 설정됨
  • 남주인공의 반복적인 언어적 모독이 '내면의 차가움'으로 낭만화됨
  • 상대방 동의 없이 기습 키스를 감행하는 행동이 로맨틱한 클라이맥스로 연출됨
  • 3년간의 수치와 눈물이 단 한 번의 청혼으로 전부 '해소'되는 결말 구조

비판적 시선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청춘의 정서,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이유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원작인 이타즈라나 키스는 1990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입니다.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논의되기 훨씬 이전에 탄생한 서사이니, 당시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은 어느 정도 시대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젠더 감수성이란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인식하고 그것이 일상 언어나 서사에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문제는 2024년 현재 시점에도 이 구조를 비판적 재해석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유네스코의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IL) 프레임워크는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 콘텐츠가 재현하는 성역할과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능력을 현대 시민의 핵심 역량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습니다. 화면 속 파스텔톤의 교정, 샹친이 즈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복도의 빛, 처음으로 전교 게시판에 자기 이름을 발견하고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찍던 그 순간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불완전하고 무모하고 때로는 미련하기까지 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 아직 어딘가 남아 있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꺼내어 확인하게 해주는 거울이 됩니다.

비판하면서도 설레고, 설레면서도 불편한 것. 그게 이 영화가 가진 솔직한 온도입니다. 장난스런 키스를 즐기고 싶다면, 한 번은 감정으로 보고 한 번은 질문을 가지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두 번의 관람 사이에 꽤 많은 것이 남습니다.


참고: https://youtu.be/XmyLjsNZdx8?si=cUtwFdHNW6qOWW\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