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그냥 가볍게 볼 심야 로맨틱 코미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주인공 후지코가 미팅 자리에서 횡설수설하며 분위기를 혼자 박살 내는 장면을 보다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동시에 묘하게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20대 초반의 제 모습이 그 화면 안에 있었거든요.
야와오와 카타코, 미팅 흑역사와 립밤의 반전 — 후지코의 자괴감이 낯설지 않은 이유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잘하려고 했는데, 입을 열수록 상황이 더 꼬이는 그 공포. 후지코는 미팅 자리에서 변호사 코야나기가 등장하는 순간 완전히 무너집니다. 긴장이 폭발하면서 혼자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결과는 냉정한 "이제 나가자"라는 코야나기의 한 마디였습니다.
저 역시 20대 초반에 타인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말이 꼬였습니다. 누군가 호의를 보여도 "나 같은 사람을 왜 좋아하겠어"라는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해 지레 벽을 쳐버리곤 했으니까요. 후지코가 자포자기하며 "어릴 때부터 여자답지 못해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장면에서, 그건 그냥 드라마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속으로 수백 번 되뇌었던 말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후지코의 심리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부정적 귀인(self-defeating attribution) 패턴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기부정적 귀인이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결과를 외부 상황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결함 탓으로 돌리는 인지 방식입니다. 후지코는 미팅이 어색해진 이유를 "내가 못생겼고 매력이 없기 때문"으로 귀결시키는데, 이 패턴은 실제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코야나기가 2차 자리에서 후지코의 얼굴을 잡고 다가오는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의 톤을 설명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키스인 줄 알고 기겁한 후지코에게 코야나기가 꺼낸 건 립밤이었고, 그 허탈한 반전이 터진 순간 드라마는 독설가의 뒤에 숨겨진 세심함이라는 코야나기의 핵심 캐릭터를 단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시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장면이야말로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잘 만든 연출이었습니다.
자존감 회복의 진짜 과정 — 드라마가 설득력 있는 지점과 미끄러지는 지점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자존감(self-esteem) 회복의 방식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요?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심리적 평가 능력을 말하는데, 코야나기는 후지코에게 "여자는 스스로를 먼저 사랑해야 빛이 난다"는 조언을 건넵니다.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한 가지 불편한 지점을 느꼈습니다. 드라마가 그 회복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메이크업, 패션, 귀걸이라는 외형적 변신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외모 가꾸기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제 경험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옷을 골라 입었을 때 실제로 태도가 달라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드라마가 자존감 회복의 시각적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매번 "꾸민 후지코"라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드라마 서사에서 종종 지적되는 메이크오버 내러티브(makeover narrative) 구조의 한계입니다. 메이크오버 내러티브란 주인공이 외적인 변신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모 개선 자체를 성장의 증거로 치환하는 서사 방식입니다. 이 구조는 여성의 자존감 문제를 사회 구조적 시선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과 소비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붙잡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후지코가 친구 쿠미와 같은 귀걸이를 한 것을 보고 귀걸이를 빼 던지고 뛰쳐나가는 그 순간입니다. 아무리 꾸며도 타고난 미인 옆에서는 모조품처럼 느껴진다는 그 열등감, 저는 그게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코야나기가 "과거의 내 모습과 닮아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할 때,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잠시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기부정적 귀인 패턴을 가진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포착한 점
- 미우라 쇼헤이의 연기를 통해 케어와 독설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한 점
- 외형적 변신을 자존감 회복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 메이크오버 내러티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
- 코야나기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로맨스 장치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퀴어 소비라는 불편한 시선 — 이 드라마를 마냥 편하게 볼 수 없었던 이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코야나기라는 캐릭터를 드라마가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내가 지금 이 캐릭터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게, 어쩌면 그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편함.
코야나기는 게이이자 바이섹슈얼(bisexual), 즉 양성애자입니다. 양성애자란 성별에 관계없이 감정적·성적 끌림을 느낄 수 있는 성정체성을 의미하며, 단순히 "이쪽도 저쪽도 다 가능하다"는 식의 이분법적 이해와는 다릅니다. 드라마는 코야나기가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가 제대로 탐구되는 시간은 놀랍도록 짧습니다.
대신 드라마는 코야나기를 후지코의 변신을 이끄는 조력자이자, 그녀의 연애를 지도하는 멘토이자, 결국 로맨틱한 감정이 싹트는 상대로 소비합니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 GBF(Gay Best Friend) 트로프입니다. GBF 트로프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게이 남성 캐릭터가 여성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력자 역할로 등장하되, 자신만의 서사는 거의 없고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장치로 기능하는 클리셰를 말합니다. 이 공식이 성소수자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중 가장 흔하면서도 비판받는 방식이라는 건 이미 다수의 미디어 비평에서 지적된 바 있습니다.
후지코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을 뿐"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코야나기의 얼굴이 굳는 것, 드라마는 그 순간의 상처를 분명히 포착합니다. 그러나 불과 다음 장면에서 코야나기는 독감에 걸린 후지코에게 죽을 끓여 달려가는 다정한 남자로 재등장합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그 상처를 안고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는지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부분에서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한 꺼풀 벗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야와오와 카타코는 분명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드라마이고, 코야나기 역의 미우라 쇼헤이의 연기는 인생 캐릭터라는 평가가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후지코의 자존감에만 공감하고 코야나기의 고독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드라마가 저지르는 것과 같은 소비를 반복하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힐링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종종 감동받는 것에 집중하느라 불편한 질문을 미루게 됩니다. 야와오와 카타코는 그 미루어진 질문을 꺼내기에 오히려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왓챠와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하니, 후지코의 서툼에 공감하면서도 코야나기라는 인물이 침묵 속에 감추고 있는 것에도 한번쯤 시선을 돌려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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